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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Just a ...

딸을 위한 시

1. 방금 산 계란이 터져있던 걸 알고 교환을 위해 마트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고객센터 번호표를 뽑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려고 뒤를 돌았다. 딱 봐도 노숙인 행색의 아저씨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나는 일부러 그 옆에 앉았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나랑 그 사람이랑 다르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설득하면서, 나에게 말이라도 걸으면 친절히 대답하고자 마음 먹었다.

2. 기대와 달리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 아저씨는 이내 화장실로 향했는데, 착각한 듯 여자 화장실로 잘못 들어갔다 나온 후에 멋쩍게 웃었다. 멋지게 차려 입은 중년의 신사라면 '실수'라 여겨질 일도, 몰골이 그러하니 '일부러 잘못 들어간 거 아니야?'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

3. 난 곱게 자란 자식이다. 공부도 제법 했고, 주변에 꽤 잘 나가는 친구들도 많다. 집에서 뒷바라지도 많이 받았다. (전엔 몰랐는데 돌아보니 과분했다.) 교회도 그런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곳을 '골라' 다니다 보니 그게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근데 군대에 갔더니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진짜 많은 걸 가지고 누리는 사람이구나. 세상 사람들은 정말 다양하구나.

4. 다 같은 사람이다. 그건 몸소 부딪히면 바로 알 일이다.

5. 나는 부모 세대가 각고의 노력으로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럼에도, 나는 부모 세대보다 더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해 고민(해야)한다.

6. 부모 세대가 모질게 살아온 인생 덕인지, 우리는 어릴 적부터 경쟁 속에 살아간다. 으레 어릴 적부터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 – 남보다 더 잘사는 사람 – 이 되도록 부추김 당한다. 단 한번의 인생 경주 속에서 낙오되면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힌다. 요즘은 태어나자마자 산후조리원에서 사람의 신분이 정해진다. 산후조리원에서 만난 인맥으로 세상살이의 혜택을 볼 요량이다. 이게 요즘 세상이다.

7. 경쟁구도에서 남는 것은 결국 “나는 너랑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야!”란 가치관이다. 이런 생각은 세월호와 위안부 합의, 사드 배치 등 일련의 국가적 사건의 양상들을 잉태한다.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말처럼 소위 고위층에 깔린 “민중은 개, 돼지”란 저렴한 철학은 우리 사회의 ‘지배 구조’를 형성하고 ‘가만히 있으라’고 종용한다. 거기엔 모종의 국민적 합의는 없다. 왜냐하면 일반 서민들은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깜이 안 되기 때문이다.

8. 이런 사회적 구조에서 혜택을 본(적어도 살아남은) 어른들은 소위 ‘보수’란 이름을 달고 현 체재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국가 지도자의 국정농단이 벌어졌는데도 말이다. 국가의 부정부패가 만연해도 국가의 안위를 위해 정치인과 재벌을 놔두라는 논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들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한국전쟁도, 경제적 어려움도 모르는 것들이라 혀를 차도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이해의 범위를 가뿐히 넘어선다.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면 모조리 ‘종북 빨갱이’가 된다. 더 나아가 ‘계엄령을 선포하라!’고 외치기도 한다.)

9. 경제 발전 속도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우리의 민주주의 역시 나름의 굴곡을 품고 진보하고 있다. 그건 별볼일 없는 일반 소시민들의 저항을 통해 가능했으리라. 어쩌면 그들도 개인적 불행을 맞닥뜨리지 않았다면 모른 척 지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저항과 몸부림 없었다면 우리는 평생 개, 돼지처럼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10. 나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자식에게 당당한 부모가 되고 싶다. 나는 무엇보다 사람은 모두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칠 것이다. 내 자식이 만나는 사람의 행색이 어떠하든지 같은 사람으로서 대화하고 이해하는 법을 가르칠 것이다.


딸을 위한 시 / 마종화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가를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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